심사역이 말하는 투자받는 IR자료 작성법 5가지
지난 2021년 ‘무조건 투자받는 IR자료 작성하기’ 콘텐츠를 공유드린 적 있습니다. IR자료를 작성하는 많은 대표님들이 해당 콘텐츠의 도움을 받으셨죠. 하지만 어느덧 2024년. 3여 년이 지난 현재, 투자시장의 상황은 매우 달라졌습니다.
당시 시장은 모험자본이 역대급으로 풀리며 유동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와 이를 실행할 팀이 있다면 투자자들이 우선 이야기를 들어줬습니다. IR자료 내용이 다소 두루뭉술해도 투자자와 접점을 만드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죠.
그러나 최근에는 시장에서 모험자본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과거 가능성을 알아봐줬던 투자자들이 이제 수익성을 증명하라고 요구합니다. 리스크를 수용할 수 있는 역치가 달라진 셈입니다.
이에 2021년 공유드렸던 IR자료 작성 방법이 아직 유효하다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당시의 시장 논리가 비정상적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시장은 다시 본질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논리에 부합하는 IR자료를 작성할 수 있는지 도움을 드리고자 콘텐츠를 준비했습니다.
문제
- 모든 이야기는 소비자의 지갑에서 시작한다
많은 대표님들이 시장 배경에 대한 내용으로 IR자료를 시작합니다. 성장하는 시장을 발견했고, 해당 시장에 좋은 솔루션으로 접근하여 성공하겠다는 레퍼토리입니다. 물론 이러한 구조로 설명이 가능한 사업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만나본 대부분의 스타트업을 떠올려 보면, 이러한 스토리로 투자유치를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장이 좋다고 해서 모든 사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장이 좋든 나쁘든 결국 성공하는 것은 좋은 ‘서비스’입니다. 우리의 서비스가 시장에서 ‘좋은’ 서비스라는 점을 어필해야 하는데, 해당 내용 없이 단순히 시장이 좋다는 점만 강조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좋은 서비스의 정의는 산업군마다 다릅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산업군에 대해 투자자가 다 알고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좋은 서비스의 평가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고객의 니즈를 충족 시켜서 시장의 만족을 이끌어내고, 또 과금까지 이뤄내는지 - 이 기준을 설명하는 장표가 문제에 대한 장표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위 장표는 국내 HR테크 기업인 스페이스와이(DIO)가 문제를 정의한 장표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해당 시장에서 좋은 서비스는 1) 시니어급 인재를 많이 모으고 2) 기업이 이들을 저렴하게 활용하고 3) 시니어급 인재들이 이직에 대한 리스크를 해결하는 서비스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3가지를 해결하면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해석 가능합니다.
위 장표는 미국 Copy.ai의 문제 부분에 해당하는 장표입니다. 해당 장표에서 우리는 Copy.ai가 속한 시장에서 좋은 서비스는 시간을 절약해주고, 가격도 저렴하고, 창의력에 대한 보조역할을 명확하게 해주는 솔루션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문제 장표에 들어가야 할 내용은 ‘고객이 지갑을 여는 포인트’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리고 해당 포인트를 충족 시킨다면 소비자들이 당사에게 큰 매출을 안겨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줘야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고객’입니다. 거래에서 자금의 원천은 결국 고객인 만큼, 고객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솔루션
- 우리는 이거 다 해결해요!
문제 정의가 끝났다면 이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설명할 차례입니다. 이때 많은 대표님들이 기술에 대한 자부심에 가득차서 당사의 기술에 대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자랑하시곤 합니다. 하지만 해당 IR자료를 읽는 투자자들은 95%의 확률로 대표님과 전문 분야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용어로 기술만 설명한다면 서로 이해하는 바가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투자자들은 대부분 시장의 전문가입니다. 그들이 기술보다 더 관심이 있는 건 고객입니다. 고객이 당사가 제시한 솔루션에 대해 진짜 공감을 할지 궁금해합니다. 즉, 솔루션을 설명할 때는 ‘고객 경험’ 관점에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aircall의 경우 문제 장표에서 시장에 이미 존재하는 3개의 솔루션과 각 옵션의 약점을 설명하며 문제를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솔루션 장표에서는 어떻게 해당 약점을 보완해서 3가지 옵션의 장점을 결합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제를 고객 관점에서 서술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연결해서 작성하여, 고객 경험에 대한 내용으로 직결한 것이죠.
여기서 핵심은 고객이 얻게 되는 ‘가치’입니다. 고객이 겪는 문제는 사실 가치의 부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용이 문제라면 비용 절감이라는 가치를,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라면 시간 단축이라는 가치를, 복잡한 절차가 문제라면 편리한 유저 경험이라는 가치를 제공해야 합니다.
기술은 그 자체로 가치를 창출하지 않습니다. 기술은 가치를 제공하는 매개체일 뿐입니다.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지 않는 기술은 시장에서 도태되며, 반대로 가치를 제공하는 기술은 선택받게 되어있습니다. 이를 명심해서 솔루션 장표를 작성하셔야 합니다.
더불어 당사가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면 더 좋습니다. 투자자는 앞선 내용을 통해 당사가 어떤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고객이 지불하는 비용, 즉 비즈니스 모델(또는 과금 정책)에 대한 내용이 추가되면 투자자는 종합적으로 고객 경험을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때 절대로 비즈니스 모델을 복잡하게 설명하면 안된다는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위 장표는 스튜디오와이의 비즈니스 모델 장표입니다. 어떻게 돈을 버는 구조인지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비즈니스 모델은 누구나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명료하게 잡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복잡한 비즈니스 모델은 투자자의 이해도가 떨어져 투자 성사가 어려운 것은 물론, 사업적으로도 이해당사자 간의 이해상충으로 인한 불필요한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과
-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우리의 일상 생활을 떠올려 봅시다. 항상 계획한 대로 일이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사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사가 발견한 문제가 실제 고객에게 문제가 아닌 경우도 있고, 발견한 문제가 맞더라도 당사의 솔루션이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솔루션이 적합하더라도 비즈니스 모델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쉽게 말해, 당사가 IR자료에서 서술한 내용은 주장 또는 가설일 뿐, ‘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필요한 건 당사의 주장과 가설이 신빙성이 있다는 데이터입니다. 이때 통상적으로 사업적 성과를 활용합니다.
해당 장표는 미국 헬스케어 스타트업 루틴의 IR자료 중 성과에 대한 내용입니다. 여기서 중점은 ‘핵심 지표’입니다. 핵심 지표는 사업의 현황을 대표할 수 있는 지표를 뜻하며, 해당 지표의 행방을 기준으로 사업적 성과에 대한 판단이 가능합니다.
루틴의 경우 2개의 지표를 핵심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가진단키트 판매량, 또 하나는 신규 멤버 1명당 자가진단키트 판매 비율입니다. 이 2가지 지표를 보면, 각각 매출과 객단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회사의 사업이 잘 되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라고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핵심 지표를 설정할 때는 항상 비즈니스 모델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성과 장표는 결국 당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정상 작동할 것이라는 가설을 증명하는 부분입니다. 비즈니스 모델에서 언급한 내용과 흐름이 맞아야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능합니다.
시장
- 우리에게 유효한 시장은?
시장 규모를 추산할 때 많은 대표님들이 시장 조사를 참고하십니다. “세계 시장의 규모는 $N억이며, 아시아 태평양 시장의 규모는 $M억입니다. 이 중 우리가 r%를 점유한다면 기대되는 매출은 약 $P입니다”는 식입니다. 물론 해당 방법은 제3자가 추산한 수치인 만큼 객관성이 있다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투자자 관점에서 가장 신뢰하기 어려운 내용 중 하나가 “시장의 r% 점유”라는 것입니다. 서비스를 출시한다고 쉽게 시장을 점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해당 시장의 모든 구성원 중 r%를 고객으로 잡겠다는 것은 무분별하고 집중력 없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습니다.
위 장표는 일레븐랩스라는 AI 기반 더빙 솔루션 기업의 IR자료입니다. 시장을 잠재적 고객 유형으로 잡고, 작은 원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하위 개념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해당 장표를 통해 보여주는 바는 2가지입니다.
하나는 시장의 규모 - 우리가 겨냥한 시장이 매우 크다는 점을 어필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시장을 어떻게 점유해 나갈지에 대한 전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초기 고객군을 어떻게 보고 있고, 이후 어떤 고객군을 공략해서 당사가 겨냥한 파이를 키울지에 대한 논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작은 원이 초기 타겟 고객군이며, 이후 점차 고객군을 확장해 나갈 것이라는 계획을 파악할 수 있죠.
팀
- 우리는 해낼 수 있는 팀입니다
스타트업 투자는 불확실성이 매우 높습니다. 특히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대부분의 것이 미지의 상태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스타트업이 아무리 논리적인 주장이 펼치더라도 이에 대해 강한 신뢰를 가지기 어렵습니다. 그럴 때 중요한 기준은 과연 이 팀이 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을까입니다.
초기 투자는 사람을 보고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IR자료에서 팀 소개는 매우 중요한 영역입니다. 그런데 많은 대표님들께서 회사의 연혁과 대표의 이력 및 학력은 세세하게 서술하시는 반면, 함께 업무를 진행하는 팀원의 이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는 것은 대표 한 명을 보고 투자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대표가 모든 영역에서 초인적인 능력을 보유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표 한 명만을 어필해서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업은 영업, 마케팅, 기술 개발, 운영, 경영 등 각 영역이 모두 중요합니다. 때문에 사업에 핵심적인 각 영역에서 누가 업무를 주도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며, 이를 설명하는 장표가 필수적입니다.
위 장표는 미국 SaaS 관리 툴 패들이 팀을 소개하는 자료입니다. 리더십을 위주로 누가 어떤 영역을 맡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미국은 이사회의 권력이 막강한 만큼, 이사회의 구성도 함께 노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각 멤버들의 이름과 직책 밑에 약력을 서술했다는 것입니다. 각 멤버가 해당 직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죠. 투자자로서는 이러한 내용이 없다면 과연 이 팀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지 여부를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때 과도한 정보 제공보다는 해당 직무에 직결된 이력 위주로 소개하는 것을 추천드리며, 이들이 이룬 성과 위주로 서술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무리
투자를 받기 위해 우리 사업을 설명하다 보면 말하고 싶은 내용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을 확신한다면 시장 배경을 더 설명하고 싶고, 팀 구성원이 훌륭하다면 이를 더 어필하고 싶을 것입니다. 물론 사업의 매력도를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포함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 내용을 다 빼고 위 내용만 담으라는 조언을 드리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이는 부수적인 내용이며, 핵심적인 내용을 우선적으로 배열하고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드리고 싶습니다. 사업의 핵심은 수익을 내는 것이며, 이는 곧 비용을 통제하고 매출을 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매출을 낸다는 것은 결국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이들의 지갑을 열게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 없이는 투자자의 마음을 결코 사로잡을 수 없습니다.
IR자료의 핵심은 사업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을 항상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