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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원사업은 공돈이 아니다

<사진제공 : (주)하프스>

‘대한민국은 창업하기 좋은 나라다.’ 이런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말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이 많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요. 대한민국만큼 스타트업을 위해 정책과 자금을 지원하는 나라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투자를 위한 모태펀드부터 사업 초창기 때 활용 가능한 예비창업패키지와 초기창업패키지에 심지어 창업사관학교까지, 각 단계마다 정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이 포진해 있는데요.

심지어 이 자금들은 대가성이 없습니다. 투자받을 때 지분을 내어주고 대출받을 때 이자를 내야 하는 것과 달리, 정부지원사업은 증빙만 하면 그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자금계획에 정부지원사업을 포함하는 대표님은 물론, 정부지원사업으로 자금을 마련해 초기 투자단계를 건너뛰는 분들도 종종 보이곤 합니다.

문제는, 이 대가성 없는 자금에 비용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다른 자금들보다 비용이 훨씬 더 높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소중한 기회들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들이 도리어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부지원금의 이점

대출을 받게 되면 이자가 발생합니다. 이자를 제때 갚지 않으면 이자에 이자가 붙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매출을 넘어 이익이 나는 상황인데도 많은 대표님이 대출을 기피하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투자에 대해서는 선호도가 높습니다. 기한이 없고, 갚아야 할 의무가 없는 자금이므로 경영에 부담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투자 역시 자금을 위탁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다른 의미로 비용이 발생합니다. 투자단계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고의무는 물론, 사외이사 선임, 주주의결권 등 다양한 권리가 투자자들에게 생기게 됩니다. 투자를 한두 번 잘못 받아본 대표님들 사이에서는 이런 이유 때문에 투자받기를 꺼려하는 분위기도 형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지원금에는 이와 같은 책임이 따르지 않습니다. 대출처럼 갚을 의무가 없고, 투자처럼 각종 조건이 붙지도 않죠. 정부지원사업 공고에 기재된 내용만 성실히 이행하면 특별한 조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업 방향성만 일치하면 제품 개발에도 도움이 됩니다. 일석이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가는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정부지원사업 역시 대가가 존재합니다. 단, 다른 자금유형과는 다르게 비용계산이 좀 어려울 뿐입니다. 정부지원사업은 한마디로 여러분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정부지원금을 받기 위한 서류작업은 대출금이나 투자금을 받기 위한 과정과 비슷합니다. 대출과 투자는 자금을 받은 후부터 서류작업에 들어가는 시간이 크게 줄어드는데요. 여기가 바로 정부지원금과 확연하게 달라지는 포인트입니다. 대출의 경우 상환의무만 남고, 투자금 역시 투자자들에게 주기적인 보고 의무 외에는 사업과 관련해 특별히 준비해야 하는 자료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지원사업은 다릅니다. 각 사업별 양식에 맞춰 성과에 대해 서술해야 할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요구되는 서류들에도 대응해야 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각 사업마다 의무로 참석해야 하는 행사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R&D 사업은 사업성과 발표회, 예비창업패키지/초기창업패키지는 각종 교육세션과 행사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액셀러레이터와 달리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인 경우가 많습니다. 황금같은 시간을 이렇게 사용하다 보면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장이 더뎌져 경쟁사에 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 정부지원사업을 받지 말아야 하나요?

절대 아닙니다. 정부지원사업에서 나오는 자금은 누가 뭐래도 필요한 자금입니다.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사업에 이득이 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정부지원금을 무분별하게 받다 보면 발생하는 비용이 이득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시간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극초기 스타트업은 정부지원사업을 통해 자금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에 탄력이 붙기 시작하고, 고객들이 생기기 시작하면 시간의 가치가 더욱 비싸지기 마련입니다. 고객들이 기다리고 있고, 이들의 의견을 빠르게 반영해 더 성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는 시간을 요하는 정부지원사업이 아니라 자금과 조언을 적재적소에 조달할 수 있는 투자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투자자들에게 검증을 받았다는 사실이 잠재적 고객들은 물론, 구직자들에게도 어필이 가능하다는 장점까지 있습니다.

이후 서비스가 안정화되기 시작하고,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회사에 대한 통제권을 요구하는 투자보다는 이자만 내면 되는 대출이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미래의 매출과 이익을 당겨서 목돈을 받고, 이를 투자해 더 큰 매출과 이익을 낼 수 있다면, 회사의 통제권을 내어주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무조건적인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각 사업마다 필요로 하는 것이 다르고, 대표님마다 성향도 다르기 때문에 상황에 맞춰 내리는 선택이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하지만 각 자금처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선택하는 것과 모르고 선택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옵션의 장단점을 참고해 사업 성장에 도움이 되는 판단을 전략적으로 내리시길 바랍니다.

필자 김수현

현재 넥스트유니콘의 전략총괄(Head of Strategy)로서, 성장 전략 및 신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액셀러레이터 심사역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바이오테크와 암호화폐/블록체인 스타트업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엔젤투자자로도 활동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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