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고정자산 관리가 필요한 이유
“사업만으로도 바쁜데 고정자산 관리, 꼭 해야 할까요?”
회계사로서 여러 스타트업 대표님들을 만나 다양한 자문을 제공하며 느낀 점 중 하나는 비즈니스 모델 구상, 마케팅, 홍보, 영업 등 프론트 오피스(Front office) 영역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는 상당한 반면, 회계와 같은 백 오피스(Back office) 영역에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회계 분야가 대표님들의 전공이 아닌 경우가 많고, 충분하지 않은 자금과 예산으로 인해 필요 인력을 채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높은 프론트 오피스에 집중하다 보면 아무래도 백 오피스에는 경험 많은 경력 직원을 채용할 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애매모호한 자산과 비용 구분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쉬운 내용일지라도 관련 경험이 부족한 대표님이나 회계 담당자 입장에서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요. 그중 하나가 바로 자산과 비용에 대한 구분입니다. 흔히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무엇이 자산이고, 비용인지를 곰곰이 고민하다 보면 의외로 그 구분이 모호한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 극단적인 예로 차량 한 대와 볼펜 한 자루를 각각 구입한 상황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자산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회계 담당자라면 흔히 물리적 형태의 유무를 구분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둘 다 똑같이 물리적인 형태가 있는 유형의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차량은 유형자산으로, 볼펜은 사무용품비와 같은 비용으로 처리되는 상황을 쉽게 납득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유형자산을 포함하여 많은 자산이 물리적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은 맞지만, 물리적 형태가 자산으로 분류되기 위한 필수 조건은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은 개발비나 특허권 등은 물리적 형태가 없음에도 무형자산으로 분류되고, 외상으로 물건을 판매하고 거래처로부터 대금을 받을 권리를 매출채권이라는 자산으로 인식하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자산과 비용을 구분하는 기준
회계에서 정의하는 자산이란 미래에 경제적 효익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는 자원을 뜻합니다. 미래의 경제적 효익이란 표현이 다소 생소해서 쉽게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회사의 미래 현금흐름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의미입니다. 더 쉽게 말해 회사가 돈을 버는데 기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가서 이러한 관점으로 차량과 볼펜을 살펴보면, 차량과 볼펜 모두 구입을 위해 회사 통장의 돈이 외부로 유출되었지만, 차량은 사용하는 기간 동안 회사가 돈을 벌어들이는데 상당한 기여를 할 테니 그 유출을 자산으로 기록합니다. 반면, 볼펜은 그러한 기여를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바로 비용으로 처리되는 것입니다.
사후 관리가 필요한 고정자산
결국 자산에 해당한다는 것은 회사가 사업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매출 발생에 기여하는 핵심 자원이라고 볼 수 있는 만큼, 그에 맞는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매출채권이라면 혹시나 거래처의 자금 상태가 나빠져 대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은 없는지를, 특허권이라면 다른 경쟁자들로부터 그 권리가 침해되고 있지 않는지를, 그리고 유형자산이라면 어떤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어디에, 어떤 상태로, 누가 사용하고 있는지 등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관리 또한 스타트업의 한정된 인적 자원이 투입되는 일이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발생하곤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고정자산(유형자산과 무형자산)입니다. 고정자산이란 1년 이상 회사 내부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취득하는 자산으로 투자자산, 유형자산, 무형자산이 그에 해당하나 통상적으로 유형자산과 무형자산을 통칭하며 고정자산으로 표현합니다.
모니터나 노트북과 같은 유형자산은 어차피 눈앞에 보이고 있고, 특허권 같은 무형자산은 지금 당장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대부분 감사를 받지 않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굳이 회계기준에 맞춰 힘들게 고정자산을 제대로 회계 처리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됩니다.
고정자산을 비용처리 했을 때 생기는 문제점
이렇게 고정자산을 회계상 자산으로 관리하지 않고 비용으로 처리하게 되면, 관리의 편의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고정자산을 취득한 시점에 비용이 과다하게 인식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업 초반에야 고정자산 취득 규모가 크지 않고, 아직 매출이 발생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고정자산 취득금액이 모두 비용으로 처리되더라도 영업이익과 같은 재무지표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성장할수록 고정자산 취득 규모 또한 증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 모두 일시에 비용 처리할 경우, 어렵게 확보한 영업이익이 해당 비용으로 인해 크게 감소하거나 영업손실로 돌아설 수 있습니다. 아울러 외부 투자자들에게 회사의 재무지표가 좋지 않게 비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정부지원금으로 고정자산 취득 시 주의사항
고정자산을 정부 보조금으로 취득하는 경우에도 원칙상 고정자산을 자산으로 인식하고 정부 보조금 효과를 고정자산에서 차감 표시해야 하나, 관리의 편의상 많은 스타트업들이 고정자산 취득을 비용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지원 기관으로부터 수취한 정부 보조금은 통상 영업외수익으로 반영되어 마찬가지로 영업이익이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습니다.(물론 회사가 인식한 비용과 정부 보조금 수익을 서로 상계하는 회계 처리도 가능).
외부 투자자가 바라보는 시선과 우려
고정자산을 모두 비용 처리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회사에 돈을 벌어줄 핵심 자원인 고정자산이 비용으로 처리되는 바람에 재무제표상 자산 내역에 보이지 않을 경우, 회사의 핵심 역량에 대한 외부 투자자의 의심 어린 시선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의 기술력과 직결되는 연구설비, 생산설비 등이 자산으로 보이지 않는데, 회사가 어떻게 빠르게 성장하고, 유의미한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지 투자자 입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오히려 의심 가득한 외부 투자자에게 회사의 역량을 입증하고 설득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수도 있고, 회사가 자체적으로 고정자산을 관리하지도 않았으니 입증할 자료가 없어 처음부터 자산으로 회계 처리해온 것보다 더 많은 인적 자원을 투입해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내부 의사결정을 위한 고정자산 관리
고정자산이 자산으로 관리되지 않을 경우 회사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고정자산의 특성상 한 번 취득하면 오랫동안 사용되는 만큼 회사가 보유 중인 자산에 무엇이 있고, 자산의 상태(정상, 고장 등)가 어떠하고, 누가 어디에서 사용을 하고 있는지 등을 알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적시에 알 수 없다면 대표님이나 구매 담당자가 고정자산 취득에 대한 의사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고정자산을 추가 취득하기로 결정했는데 알고 보니 미사용 중인 유휴자산이 더 있었을 수 있고, 반대로 미사용 중인 자산으로 대체하기 위해 추가 취득을 하지 않았는데 막상 사용하려고 보니 고장 난 상태이거나, 이미 분실되어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특히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고정자산의 수량도 많아지고, 취득이나 처분 또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을 때 중복 구매나 손/망실 등으로 인한 불필요한 추가 지출이 더 크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가용 자금이 부족한 스타트업에는 더욱 안타까운 일이죠.
올바른 고정자산 관리의 필요
따라서 회사가 여러 사정에 의해 고정자산을 비용으로 회계 처리하더라도 그와는 별개로 고정자산 관리 대장을 통해 보유 중인 고정자산을 관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비록 고정자산 관리 대장 작성을 위해 일부 인적 자원의 투입이 발생할 수는 있겠지만, 미래에 발생할 다른 비효율과 경제적 손실을 줄여줄 것이므로 처음부터,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합니다.
필자 소개
브릿지파트너스 강경구 대표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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