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 '요식업'
지난해 12월 20일, 한 유명 유튜버의 동영상이 화제가 됐습니다. 바로 6천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인 Mr. Beast가 버거가게를 열어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는 영상이었는데요. Mr. Beast라는 유튜버는 이처럼 기부하는 콘셉트의 동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 영상은 다른 영상들과는 다른 재미있는 요소가 또 있었습니다. 영상에서 무료로 나눠준 햄버거 메뉴를 미국 전역에서 바로 주문해서 배달 받을 수 있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입니다.(1)
실제로 당시 영상을 본 수천만명의 시청자는 영상을 본 직후 배달 앱을 통해 Mr. Beast Burger라는 새로운 레스토랑이 미국 전역에 300여 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바로 주문해 햄버거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루아침만에 미국 전국에 300개가 넘는 지점을 열었다는 점인데요. 국내로 예를 들면 한국에 진출한지 약 34년이 넘은 맥도날드와 버거킹의 지난 3월 기준 국내 매장수가 각각 404개, 411개임을 감안할 때(2), 얼마나 비현실적인 이야기인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심지어 전문 F&B 사업을 전개하는 기업도 아닌 유튜버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300개 매장을 오픈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공유주방’ 사업모델을 도입했기 때문입니다. 메뉴에 상관없이 주방을 소유하고 있는 레스토랑은 누구나 Mr. Beast Burger 가맹을 신청할 수 있었고, 높은 초기 비용 부담 없이 300개가 넘는 체인점을 미국 전역에 오픈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국내에도 배달음식문화가 확산되면서 공유주방이라는 개념이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많은 스타트업들이 생기고, 투자유치에도 성공하고 있죠. 전 세계 F&B산업이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통적인 요식업 비즈니스가 무너지고 있고, 신개념 생태계가 생겨나고 있는 요즘, 요식업의 비즈니스 생태계는 앞으로 어떻게 변해가게 될까요?
요식업이라는 산업
먼저 전통적인 요식업 비즈니스 확장 방식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메뉴를 개발하고 이 메뉴에 대한 수요가 있을 지역에, 위치와 가격 조건이 수익이 날 수 있을 정도인 곳에 인테리어 비용을 들여 시공을 한 후 장사를 시작하게 되는, 길고 어려운 과정은 물론 초기 비용이 꽤나 큰 비즈니스입니다. 따라서 요식업 프랜차이즈 산업의 경우 다른 산업과는 달리 확장의 속도가 매우 느릴 수밖에 없었죠.
해당 비즈니스의 CAPEX(Capital expenditures, 미래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지출한 비용)를 보면 사업 확장 속도가 보입니다. CAPEX가 높으면 사업 확장에 필요한 자금이 많아 큰 비용이 필요하게 됩니다. 반면, CAPEX가 낮으면, 현금 흐름성만 나쁘지 않다면 이에 대해 크게 고려할 필요는 없죠. 확장할 때 부담이 덜 된다는 것이죠.
최근 떠오르고 있는 SaaS는 후자에 속하는 대표적인 산업입니다. 개발 환경만 조성되면, 이후 추가로 들어가는 CAPEX가 일반 운영비와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전 세계로 확장할 수 있는 구조가 됩니다. 심지어 CAPEX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서버 구축 비용도 요즘엔 AWS같은 클라우드를 통해 운영비로 처리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반면 레스토랑은 정 반대인 상황입니다. 레스토랑 하나를 확장할 때마다, 이전 지점에 들였던 비용에 버금가는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주방, 인테리어, 요리도구 등 초기 비용은 동일한 수준입니다. 물론 지점 하나씩 늘 때마다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약간의 비용을 줄일 수 있긴 하지만, 규모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비용을 분담한다면? 프랜차이즈 모델
그래서 발명된 비즈니스모델(이하 BM)이 프랜차이즈 모델입니다. 쉽게 말해 다른 이와 비용을 분담하여, 서로 지출하는 CAPEX를 줄이는 것이죠. 초기 비용과 리스크를 분담하고, 이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에 대해서도 서로 투자한 만큼 균등하게 분배하겠다는 것이 프랜차이즈 사업의 핵심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구조이지만, 현실적으로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품질관리인데요. 실제로 이런 문제 때문에 스타벅스의 경우 직영점만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품질관리는 프랜차이즈 사업에 치명적인 문제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은 계약조건에 재료 납품 및 물류를 포함시켜, 모든 가맹점에게 동일한 재료를 제공하여 품질을 관리하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죠. 물류를 통해 각종 비리, 횡령, 일감 몰아주기는 물론, 시중 가격과는 다소 괴리감이 있는 가격 정책과 독과점 계약을 통해 사실상 불평등한 계약관계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불거지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 행태가 이에 속합니다.
월세만 내세요 - 공유주방
프랜차이즈 모델은 오랜 시간 요식업의 주요 사업 모델로 지속돼 왔습니다. 하지만 요식업 역시 코로나 사태를 비켜갈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통째로 바꿔버린 코로나19답게 식사는 물론 친목의 공간으로 꼽히던 식당의 역할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이에 식당의 새로운 모델인 공유주방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요식업 비즈니스에서 단순히 매장수 확장이 아니라 주방만을 확장하여 매출과 이익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죠.
사실 이 BM의 시작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2015년 처음 언급된 공유주방(영어: ghost kitchen)은 요식 업계에서 비윤리적인 행동에 대해 고발하는 내용으로 처음 소개되었습니다.(3) 그만큼 당시 한 레스토랑에서 여러 가게를 운영하는 것은 대중적으로 비판을 받던 시기였죠. 위생적인 것은 물론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인식도 있었으며, 심한 경우에는 그런 레스토랑에 대해 불매운동까지 일어나는 경우도 생기곤 했습니다. 하지만 매장 식사가 일상이었던 세상에서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내가 식사하고 있는 일식집에서 중식 배달도 하고, 피자 배달도 한다면, 위와 같은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이겠죠.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배달음식에 대한 인식이 자연적으로 개선됐고, 그 음식이 준비되는 공간이 위생적이기만 하면 문제없다는 생각이 보편화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공유주방이 자리를 잡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레스토랑이 한 가지 음식만 만들 필요가 없으며, 심지어 다른 브랜드 메뉴도 함께 만들어도 전혀 문제없게 된 것이죠. 식당시설 하나로 여러 사업체가 운영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음식점 점주들은 별도의 수익 구조도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공유주방을 넘어 - Ghost Franchises
한번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은 요식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습니다. 공유주방이 레스토랑들의 수익구조를 개선해 줬다면, 반대로 음식을 만드는 셰프들에게는 외연 확장에 있어 최상의 환경을 조성하게 된 것이죠.
요식업은 지점 확장에 있어 높은 CAPEX가 드는 산업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공유주방을 활용한다면, CAPEX를 월 비용으로 전환하여 큰 부담 없이 지점 확장이 가능해지죠. 이는 AWS가 서버 비용을 분할납부 가능하게 한 것과 비슷한 개념이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실력만 있는 셰프라면 메뉴 개발에 전념을 하고 공유주방을 통해 전국적으로 프랜차이즈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을 통해 Mr. Beast도 하루아침만에 미국 전국 300개 지점을 열 수 있었던 것이죠. 미국에서는 이런 BM을 Ghost Franchise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4).
요식업을 인터넷 업계에 빗대어 보자면 주방 시설 및 지점은 서버와 비슷한 인프라 요소가 됩니다. 종전 모든 레스토랑들이 이런 인프라를 위해 필수적으로 비용 부담을 했다면, 이제는 주방 시설과 지점을 중앙에서 처리해 주는 AWS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리스크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신규 레스토랑들이 쉽게 매장을 오픈하고 점포 확장까지 큰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입니다.
미래의 요식업은 어떤 모습일까?
사람이 음식을 먹는 이상 요식업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음식을 어떻게 섭취하는지에 따라 적응하는 것은 필요하겠죠.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본래 레스토랑에서 직접 식사하던 방식이 불가능해지면서 배달에 대한 심리적 허들이 낮아졌고, 이로 인해 공유주방이란 개념이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레스토랑들이 한 가지 음식만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날 수 있었고, 이런 새로운 환경으로 인해 새로운 BM인 Ghost Franchise라는 것도 생겨나기 시작했고요.
하지만, 코로나 백신 공급이 원활해지는 현 시점에서 이런 트렌드들이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다시 음식점으로 몰려오지 않을까요?
물론,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레스토랑들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을 경험한 상황에서, 이를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 식당에서 한 가지 음식을 제공하는 시대는 막을 내리지 않을까 예상하게 되는 부분이죠. 식당이란 개념이 이미 변화를 겪고 있는 만큼, 이러한 변화를 차용한 새로운 모델, 즉 프랜차이즈와 공유주방, 그리고 Ghost Franchise가 결합한 또 다른 BM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 세계 요식 업계에서도 CAPEX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민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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